십자가 ( 1992년 作 )
내고향 제주에는, 그 섬에는 무슨일이 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폭압적인 살인 기제의 작동, 매몰 협박 감시에 의한 인멸과 봉인,
살아남은 사람들의 울분과 눈물, 그리고 침묵..
물론 나는 그것을 직접 겪지 않았다
그 일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 었으니까
그러나 또한 나는 그일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두렵고 어리석었으므로....
나약하고 무력한 내가 그 죽음들을 생각하고 드러낼 수 잇다면....
그것이 절망에 빠진 나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었나 보다 ㅡ 강요배
평화스런 목가의 섬 제주에 1948년부터 2년에 걸쳐 피의 참극이 벌어졌다
제주는 삼성혈의 전설이 말해주듯 혈연 공동체적 성격이 유난히 강했고
사회주의 결사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하며
그런 것은 제주사람들이 해방을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해방과 독립의 맛'은 육지보다 제주도가 더욱 강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구성을 위한 5.10선거를 방해하기위한
남조선 노동당(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는 제주도민이 가세하여 항쟁으로 변모했다
미국정치학자 존 메릴이 '2차세계대전 후 이처럼 치열한 민중 반란이 분출된 곳은
세계어느나라에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피의 참극이 벌어 졌다
제주 4.3항쟁에 대한 군인과 경찰의 강경유혈진압, 서북청년단의 비인간적인 불법행위...
토벌대가 초토화 작전을 펴 주민 집단학살을 자행한
피의 잔혹 행위는 끝이 없었다
과거 나치나 일본군이 저질렀던 '대살 代殺'도 빈번히 발생했다
남편이 산에 올라 갔다고 아내를 죽이고 자식이 입산자라고 부모를 죽였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에 의하면
사망자 10,715, 행방불명 3,171명, 후유장애 142명 등 총 14,028명이었지만
인구감소같은 여러가지 근거를 통해 파악한 피해자의 수는
두 배쯤되는 당시 제주인구의 9분의 1인 3만 여명의 희생자를 낸 채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됨으로써, 7년7개월만에 종결되었다
제주도에 여행온 관광객 가운데 제주 4.3의 비극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얼마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
제주도를 온전히 느끼려면 빼어난 풍광과 함께 제주 4.3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ㅡ제주 4.3위원회 서중석교수의 글 '제주 4.3 항쟁의 역사적 의미'에서 요약
始原
자식을 묻는 아버지
1946년제주지역에 전염병 콜레라가 창궐한다
삼일 대시위
1947년3월 1일 3만관중은 진정한 민족해방을 갈구하며 시위를 벌렸다
양과자 반대시위
반미운동의 초보적인 형태...
발포
서북청년단 입도
4.3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경무부장 조병옥은 '서청' 파견을 요청한다
고문
약탈
겁간
입산
죽창을 깍다
횃불시위
공격
'탄압이면 항쟁이다' 1948년 4월 3일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오르고 반격이 시작되다
토벌대의 포로
육십이 넘은 늙은이며 부녀자까지 무엇 때문에 폭도로 규정받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되었는가.....
한라산 자락 사람들
조국 분단을 불러오는 5.10단독선거를 거부하며, 제주민중들은 선거 며칠전부터
무리를 지어 한라산자락으로 피신한다
한 유격대원의 죽음
부모들
젊은이를 둔 부모들은 도피 입산한 자식들을 대신하여 추궁당한 끝에 代殺 죽임을 당했다
天鳴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어.....
학살
하산민
산 속 피난민들은 투항의 깃발을 들다 폭설이 내리는 한라산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노인과 어린이, 부녀자글은 흰 수건으로 만든 백기를 들고 해안으로 하산해 왔다
이승과 저승사이 (일부)
동백꽃 지다 ( 1991년 作 )
빈 젖( 1992년 作 )
토벌대에 쫓겨 빌레 못골로 숨은 모녀는 길을 잃고 굶어죽는다
빌레못굴의 유골
북 48년 ( 1996년 作 )
'증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형상화하여 작품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증언 그것과 같은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인 것이다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역할을 맡게 되는
예술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독자는 책을 통해 그런 예술과 만날 것이다
그것은 알지 못해도 되는 사건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는 사건도 아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라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부끄러운 그런 사건인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평화와 사람다움을 위하여....
ㅡ 서경식 교수 ('고뇌의 원근법',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저자)
참고
ㅡ동백꽃 지다 ㅣ 그림 강요배, 증언 34명, 증언 정리 김종민 ㅣ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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