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겉핥기로 읽다

엿 먹어라

J cash 2018. 2. 16. 10:42





백남준은 64세 때 뇌졸증이 오며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는데

1998년 67세 때 DJ 미국 방문 환영 백악관 만찬시 접견하는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하필이면 그 순간 바지가 흘러내리며

팬티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ㅡ섹스스캔들로 시끄럽던 클린턴 대통령의 부도덕한 행동을 비꼬는 행위예술이었다,

ㅡ반신불수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의 단순한 실수였다,

ㅡ장난기 많은 백남준이 근엄한 권력자들 앞에서 보여준 희대의 정치풍자였다..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으나 

백악관과 구보타는 그것이 명백한 실수였다고 정리하고 마무리하지만

과천 국립미술관의 多多益善을 백남준과 같이 작업한 건축가 김원은

백남준의 internet highway 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클린턴이 마치 자신의 idea인 것처럼 연두교서에서 발표하자

뉴욕타임스에 'Bill Clinton stole my idea' 라는 광고까지 냈던 백남준이

클린턴에게 '엿 먹어라'하는 의도된 퍼포먼스를 한 것이며

미국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ㅡ 백남준 특유의 '유머와 위트'의 극치였다고 단정한다

ㅡ천재 백남준은 일찍부터 일방적인 방송을 듣거나 보기만 하는 TV는 독재자와 같아서

서로 소통하며 말대꾸할 수 있는 인터넷 하이웨이 망이 필요하다고 했고

말대꾸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는데

이러한 자신의 인터넷 하이웨이 망 아이디어를 클린턴이 훔쳤다고

광고를 냈던 거였다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Me Too Movement가 우리나라에도 넘어와 사회각 분야에서 시끄럽다

힘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서 강제로 성폭력을 행사하였다면

당연히 수모를 당하고 사라져야 되겠지만

이쁘다는 말을 하는 것까지도 ...또는 매력적이라 자연스럽게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게 되어도...

받아들이는 여성이 성적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것이 성희롱이고 성추행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대기업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성희롱, 성추행 등에 관해서 철저히 예방교육을 한다고 하며

특히 임원들 중에 갑자기 사직하는 경우..

것은 성문제에 결부되었기 때문일 수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주의 feminism 또는 post-feminism 작가들이

양성평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성주의의 공격적인 제스처로 봐야 할지....

그녀들의 작품에서 더 과격한 성적표현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예술과 외설의 정의 또는 경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요즘 젊은 여성 작가들 중엔

여성이 성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 주체라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성과 연관된 작품들을

또는 성행위의 여러 포즈들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작가들도 많다



장지아    서서 오줌누기 2006  150 x120 cm digital print


우리나라의 여성 미술은 장지아를 분기점으로 전후로 나뉜다는 평가를 받는

장지아 작가의 '서서 오줌누기'작품은

#Me Too Movement에서 힘 있는 자에게 나도 당했다~고 고백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그런 자들에게 엿 먹어라~하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이 힘센 클린턴에게 엿 먹이듯이...



장지아 서서 오줌누기 2006  150 x120 cm x 6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관 2014)



미술평론가 홍경한이 장지아의 작품을 해설한 2013.10.28 일자 경향신문 기고문을 읽어보  

우리나라에서도  #Me Too Movement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예술계의 풍토를

이미 수년 전에 정확히 짚었는데... 아래에 요약해 본다

" 작가 장지아는 계율과 금기에 예술로 도전해 왔다.

권력에 대항하고 금지된 것을 공개적으로 폭로해 왔다.

2006년 말, 당시 로댕갤러리에서 선보인 4분20초짜리 영상작품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둘째, 모든 상황을 즐겨라’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서술된 그의 첫 번째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 화면 밖 남성으로부터 침을 맞거나 달걀 세례를 당하고, 머리채를 뜯기는 등의 공격에 얼굴이 퉁퉁 부어버린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본래 2000년 제작된 것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신체적 폭력에 빗대고 있다.

침이나 달걀 세례 등은 예술가들이 처한 처참한 사회적·제도적 위상을 상징하며,

맞고 있는 자신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대다수 작가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작업하는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폭력 앞에 노출된 자신을 통해 작가로 성장하려면 폭력조차 즐길 줄 아는 내성을 갖춰야 한다고 꼬집는 이 작업은 미술계라는 좁은 동네에선

좀처럼 말하기 힘든 현실의 한 단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과감히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비단 미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적지 않은 공감을 얻었다. 

이후 금기에 대한 장지아의 도발은 작가 자신과 연관된 세계를 넘어 인식의 측면으로 확대된다.

 

그 한 사례가 바로 2006년 발표한 작품 ‘서서 오줌 누는 여자’다.

장지아는 영상과 사진으로 제작한 이 작품으로 보편적 규칙에 노골적으로 맞선다.

‘여자는 서서 오줌 누면 안된다’는 사회적으로 묵인된 금기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오줌이라는 소재로 인해 논란이 된 이 작품은 사실 사진 자체의 시각성보다 여성이 남성 위주의 규율로 가득한 세상에 적응하려 할 때 발생하는

여러 불편함을 환기시킨다는 데 핵심이 있다.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는 다르다는 일반적 경계에 대한 항거이면서, 신체적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불합리한 사회적 체계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의 구조를 고찰한다.

장지아의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금기와 사회적으로 묵인된 기준점을 배반하고 일탈한다.

그건 페미니스트적인 시선도 아니고 예술과 외설, 섹슈얼리즘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 자리 잡은 오랜 인식이나 규칙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되묻고 개인의 감각에 관한 것들을 작품으로 세상에 던졌을 때 사회와 연결되는

지점에서 어떤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그 중요성이 있다.

물론 그 끝은 긍정의 변화이며 그것이 장지아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ㅡ 미술 평론가 홍경한의 '한국미술 명장면'에서..



미술 평론가 반이정은

그의 신간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에서


'모든 사회는 일탈을 위한 해방구를 필요로한다

실현되기 힘든 욕구가 널뛸 해방구의 이름이 예술이다

성범죄비율에 있어서 다채로운 허구적 성애물을 용인하는 일본보다 엄격한 성윤리와 검열을 고수하는 한국이 훨씬 높다는 통계가 있다

해방구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실재의 보복을 돌려 받는다'라고 썼다





인용한 도표는 출처가 유엔 마약 범죄 연구소라고 되어있는데

아무리 유엔 통계라 하더라도 2011년도에 우리나라의 성폭력 발생비율이 일본보다 거의 7배가까이 높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매년 느는데 일본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아니면

일본여성들은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 자체의 수치심으로 신고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집계의 착오가 있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Vagina Painting


1965년 연인 관계를 맺고 있던 백남준이 '퍼페추얼 플럭서스 페스티벌'을 앞둔 어느 날

구보타 시게코에게 이 퍼포먼스를 제안하고 그녀는 수치심을 이겨내고

백남준에 대한 '사랑'으로 이 제안을 수락한다

마치 vagina에 붓을 꼽고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속 옷에 연결한 붓으로 피색갈의 붉은 선을 윗 사진자세로 그린다

백남준의 vagina painting 작품을 보는 여성이 성적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것도 성범죄 아닌가?


예술은 해방구이니까...괜찮은가?

.

.

.

.






'다음 백과사전'을 보면

‘엿’은 ‘뽁’과 함께 여자 성기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엿 먹어라’는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여자한테 잘못 걸려서 된통 당하듯이 혼 좀 나보라는 뜻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먹는 엿과 연관된 말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엿은 먹을 때마다 입안에 쩍쩍 달라붙어서 여간 먹기가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대편을 야유하거나 골려줄 때 그렇게 힘든 고생을 좀 해보라는 뜻으로 알고 쓰는데,

사실은 먹는 엿에 빗댄 것이 아니라 성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비웃는 전형적인 욕설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그래서 이 말의 근본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재미 삼아 쓰지 못하는 건데

늘그니가 주책없이... 설 명절에 이상한 글을 올렸다








SOURCES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ㅣ 반이정 지음 ㅣ 미메시스

http://blog.daum.net/chungks48/103

https://blog.naver.com/artsyr/22008251543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282150535&code=96020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flee1&logNo=220983471928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15XX3440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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