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 Saint Benedict of Nursia 1980 The Basilica of Montserrat, near Barcelona, Spain
Montserrat Gudiol은 베네딕토 성인의 탄생 1500주년 기념으로 몬세라트 수도원의 의뢰를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17세 된 아들 Jordi를 모델로 하여 검은 베네딕트 修士복을 입고 있는 젊은 시절의 성 베네딕트 성인을 그리는 동안에
아들을 잃은 Gudiol은 그녀의 혼신의 힘을 다하여 더욱더 영적인 세계에 몰두하며 기념비적인 이 그림을 완성했다
세상적인 표현보다 영성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색조와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시켰다
양손에 굳게 베네딕토회 규범책 (Rule of Saint Benedict)을 들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앞을 바라보며 서 있는 젊은 베네딕트 성인은
내면의 빛인'영성'( spirituality )을 발산하는 것처럼 거룩해 보인다
1980년 이 그림을 그리는 Montserrat Gudiol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by KKS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규모의 이 수도원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나 관광객들은
이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예술작품들 중에서도
현대적인 회화기법의 이 그림을 대면하면 더욱 강력한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성 베네딕트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 직접 쓴 베네딕토 수사 생활 규범책은 수세기 동안 기독교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couple
oil on board 61X48cm 1985
카탈루니아 출신의 여성화가 Montserrat Gudiol (Barcelona, 1933~2015)은
건축가이며 저명한 美術史家이며 탁월한 미술교육자이기도 한 아버지 Josep Gudiol Ricart의 영향을 받으며
일상생활에서 미술과 음악이 항상 생생하게 살아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는 자신이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결정할 수 있게 한 아버지는 자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신 적은 없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에게 스스로 길을 열어 가도록 하시는가장 좋은 교육방법을 쓰셨다고 말한다
후에 Ramon Rogent의 작업실에서 배우고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였고
17세 때 Casino de Ripoll (Girona)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에 매혹되었다
이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스스로 미술을 익히며 시류를 쫒지 않고..
그녀의 목표인,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 美 (timeless beauty)'에 도달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과 끈기, 기량 연마 등으로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완성해나간다
그녀의 그림들은 대체적으로 색채와 형태가 신비한 세계로부터 나오는 듯이 보이는 몽환적인 작품인데 ,
그림에서 보이는 연민 또는 슬픈 감정이 전달되는 인물들은...
영적인 공간 또는 침묵의 영역에 있는 그녀 자신의 심리적 자화상이거나...
인물들이 그림 안에서 그녀 자신과 교감하며서로 일치하는 감정을 나누며 하나가 되는 듯한...
감성적 풍경을 만들어 낸 그림들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다소 슬픔과 멜랑콜리가 느껴지는... 또는 수즙은... 어쩌면 모성본능을 표현한 것 같은 ...
성직자로도 보이는 ....그런 모습들이다
그녀는 그녀의 그림이 슬픔을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 사람들의 내면에는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페이소스나 슬픔이 있다
나는 내면의 그런 모습들,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닌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부분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손과 몸체, 머리의 위치 등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만약에 이런 것이 잘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인형을 그린 것 밖에 안된다'라고 말한다
woman and plants
oil on board 50.2X61 cm 1987
two girls one sitting and the other behind
oil on board 81X65 cm 1986
나는
Gudiol의 그림들을 보면
초현실주의나 Redon의 일부 상징주의적인 그림들, 피카소의 청색 또는 핑크 시대의 그림들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며
그녀의 모든 작품들의 바탕에는
깊고 신비스러운 침묵의 深淵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몽환적인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인물의 모습이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감싸이게 만든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부담 없이 편하게 그림을 그릴 때, 결코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보며,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내가 무엇을 그릴 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선들을 긋고, 마치 나의 무의식계의 생각들을 나의 손이 그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 그것을 보조하거나 완성시키기 위해서 나의 마음으로부터 또 다른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즉 어느 땐 그림이 그림을 잇달아 부른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거나 항당한 말 같지만, 그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
Blue maternity
oil on board 61X50 cm 1983
'Sant Jordi i el drac'. 1974. Oil on wood
Gudiol은 집안에서 중세 미술품을 복원하는 일을 도우면서
회반죽이 된 나뭇판에 곱게 여러 겹으로 색을 입히는 고전적인 옛 회화기법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데상 실력이 매우 뛰어나고
우아한 스타일로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ㅡ1980년에 그린 맨 윗 그림 The Young Saint Benedict of Nursia 와
ㅡ주정부 궁전에 걸려있는 1974년 그림 Sant Jordi와
ㅡ신문 La Vanguardia의 1983년 크리스마스 표지에 실린 Blue Maternity
3 작품이
카탈루니아의 Iconic 작품이 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1970~80년대의 카탈루니아 부유층들이 가장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1981년에 그녀는 여성으로서 첫 Real Academia Catalana of Fine Arts of San Jordi. 멤버가 되었고
1998 년에는 카탈루니아 주정부로부터 the Cross of St. George를 받았다
two girls in profile
oil on board 100X81 1974
대부분 내면적인 것과 슬픔(interiority and sadness)들을 표현한 그녀의 그림들은
매우 진지하고 사색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마치 환상의 세계를 그리듯이 거의 단색톤으로 표현했다
couple
oil on board 100X120 cm 1972
1975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이혼한 후 6자녀를 키우기위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과도한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으며...
오랜 치매(알츠하이머) 투병 생활 후 2015년 12월 25일 Barcelona에서 사망하였다
ㅡ구디올의 자서전을 집필한 미술 평론가 Juan Eduardo Cirlot는
그녀를 카탈루니아의 가장 훌륭한 Plastic Artist라고 평하면서
그녀의 그림들은 15세기 르네상스 초기의 Quattrocento시대의Fresco기법과 Picasso의 청색시대와 핑크 시대 회화의 영향을 받았고
고딕 양식에 심취한 Gothic infatuation 과 초현실주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그녀의 작품을 분류하였다
또한 그녀의 그림들은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는 큰 슬픔들로 가득 차 있어서
'헝클어진 머리카락, 매우 우아한 손, 긴 손가락, 보이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눈...등의 표현으로 그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ㅡ저작가 José Luis de Vilallonga 는 그녀를 Picasso 와 비교하면서
"그녀는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투쟁하는 화가"라고 하였다
브리짓 바르도를 연상시키는Montserrat Gudiol의 1950년대 젊은 시절 모습
바르셀로나의 미술계에서는 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ㅡ그녀의 1962년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화랑 Sala Gaspar의 Joan Gaspar는 Gudiol이1970~80년대에
카탈루니아 부르조아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화가였다고 했다
그녀가 국제적으로 도약한 것은 1964년부터 2년간 미국의 각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회를 가진
A modern Spanish Paitings Seven Catalonian Artists: Clavé, Claret, Gudiol, Tàpies, Tharrats, Todó and Vilacasas.의 결과였고
그 이후로 그녀는 Johannesburg (1967), Tokyo (1974), Moscow (1979), Cologne (1981), Los Angeles (1982), New York (1982), San Francisco (1984), Paris (1995)or London (1995), 등에서 성공적인 개인전을 이어 나갔다
two figures
oil on board 81X60 cm 1979
woman behind a rope
oil on board 100X80 cm 1972
couple
oil on board 81X100 cm 1973
naked woman and man
oil on board 100X 81 cm 1974
girl and plants
oil on board 100 x 73cm 1975
woman with dress and red background oil on board 81X60 cm 1975
group of people
oil on board 65X100 cm particular collection
girl sitting
oil on board 65X54 cm 1988
composition with figures
oil on board 50X61 cm 1982
Montserrat Gudiol의 세계는 mystery 와 melancholy가 동등한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figure
oil on board 100X65cm 1985
It's in the personal level where history gives a amazing stunt. Divorced and mother of six children, did not begin to overcome some barriers to a certain age : " Education intended to take me in other ways, for being a woman I've had to overcome many obstacles. " Always in upstream of the society and the modismos, was the scholarly woman first of the Arts Belles of Sant Jordi, in 1981. He had always some lonely spirit but in the maturity found a soul mate : Subirachs Mª Josep. As explains Ferrin Mª Ana, they both found her shelter up to parties in the tiny estudio-vivienda of the Holy Welfare and Family, where the sculptor who lived and worked nearly 20 years in the still dispute fachada of the Passion. Not only is your lives cross, also his work ; they shared a symbolic language and momentous and perhaps in this habitat the spirit of Gaudi was still present. They found what they want their figures : love, support and understanding. How did the destiny that the spirits of Gudiol and Subirachs trascendieran together in a magical enclave, impossible to imagine? The monastery of Montserrat - benedictino - preparing the celebration of the Centenario in San Benito. Josep of Laplana Calassanç, director of the Museu of Montserrat - incidentally, with a collection of extraordinary modern art - I wanted to complete the Chapel of the Santísimo, where Subirachs had already executed a key speech, to celebrate the efeméride. The occasion was a work of traditional sacred art, but Laplana was in another direction ; wrote : " I always thought that the only picture I could sing with the work of Subirachs was shortened from Gudiol María Montserrat, who didn't know personally, but we had seen and admired his work in the room about the Cent's Consell street before entering me in the monastery. Among the authors figurativos, was the one I called the attention of the sensitivity of his line, sobriety and the atmosphere of picked up silence that enveloped their figures. " Nobody was knowledgeable - except a few very close friends of the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Subirachs and Gudiol, intimate and spiritual. So fate, or the chance, would you gave Montserrat which was probably his masterpiece, " Sant Dr. Benet, " a board of size mural. Laplana describes the moment he referred the symbols that accompany the saint, from a crow with a bread to a cestillo : " I was scared. He never she would Ambrogio paint this kind of adminículos. Those were stories that distract attention that must be calculated on the protagonist's solitary figure. She never stories paints. He warned that the iconography of a saint can not be limited to just a figure and a sign that says who is, needs something more than identify you, and suggested that to hold our hands on the book of the Rule of the monasteries of which is author ".
It's in the personal level where history gives a amazing stunt. Divorced and mother of six children, did not begin to overcome some barriers to a certain age : " Education intended to take me in other ways, for being a woman I've had to overcome many obstacles. " Always in upstream of the society and the modismos, was the scholarly woman first of the Arts Belles of Sant Jordi, in 1981. He had always some lonely spirit but in the maturity found a soul mate : Subirachs Mª Josep. As explains Ferrin Mª Ana, they both found her shelter up to parties in the tiny estudio-vivienda of the Holy Welfare and Family, where the sculptor who lived and worked nearly 20 years in the still dispute fachada of the Passion. Not only is your lives cross, also his work ; they shared a symbolic language and momentous and perhaps in this habitat the spirit of Gaudi was still present. They found what they want their figures : love, support and understanding. How did the destiny that the spirits of Gudiol and Subirachs trascendieran together in a magical enclave, impossible to imagine? The monastery of Montserrat - benedictino - preparing the celebration of the Centenario in San Benito. Josep of Laplana Calassanç, director of the Museu of Montserrat - incidentally, with a collection of extraordinary modern art - I wanted to complete the Chapel of the Santísimo, where Subirachs had already executed a key speech, to celebrate the efeméride. The occasion was a work of traditional sacred art, but Laplana was in another direction ; wrote : " I always thought that the only picture I could sing with the work of Subirachs was shortened from Gudiol María Montserrat, who didn't know personally, but we had seen and admired his work in the room about the Cent's Consell street before entering me in the monastery. Among the authors figurativos, was the one I called the attention of the sensitivity of his line, sobriety and the atmosphere of picked up silence that enveloped their figures. " Nobody was knowledgeable - except a few very close friends of the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Subirachs and Gudiol, intimate and spiritual. So fate, or the chance, would you gave Montserrat which was probably his masterpiece, " Sant Dr. Benet, " a board of size mural. Laplana describes the moment he referred the symbols that accompany the saint, from a crow with a bread to a cestillo : " I was scared. He never she would Ambrogio paint this kind of adminículos. Those were stories that distract attention that must be calculated on the protagonist's solitary figure. She never stories paints. He warned that the iconography of a saint can not be limited to just a figure and a sign that says who is, needs something more than identify you, and suggested that to hold our hands on the book of the Rule of the monasteries of which is author ".
그녀는 Subirachs Josep(1927~2014)이라는 조각가를 만나 서로 긴 기간은 아니지만 Soulmate로 지냈었다고 하며
Subirachs은 그 당시 가우디의 가족 성당의 조각들을 맡아서 2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었고..
Gudiol의 성 베네딕트 그림이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에도
Subirachs의 다면 인체 조각 작품이 있다
그들은 상호 서로 존경하며 예술적 동지애를 가지고 있었고
가우디 가족 성당의 외부 조각상들을 맡아서 진행하던 현장에서 밤늦게 까지 성당 공사 현장을 거닐며
이미 작업하며 설치한 Subirachs의 조각들에 대해서 그들의 생각들을 토론하곤 하였다
Subirachs도
Gudiol이오랜 기간 알츠하이머 치매로 고통받다가 사망하기 한 해전에 파킨슨 병으로 사망한다...
( DELICATE ABYSS )
섬세하고, 우아한 深淵
물이 깊은 못이라는 뜻의 '심연'은
마음이나 의식 속의 깊은 곳,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
빠져나오기 어려운 곤욕이나 상황.... 등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인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Pepe Hevia 무용단이 Gudiol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녀의 그림들을 주제로 한.. 무용공연의 제목이
Delicado Abismo 였다
'심연'이라는 제목의 결정도..
춤도..
구디올의 그림들이 주는 느낌과 너무 딱 잘 맞는 것 같다
Montserrat Gudiol 과 Pepe Hevia 무용단 (L'Espai (Barcelona, Octubre 2004)
DELICADO ABISMO ( Delicate Abyss )
DELICADO ABISMO ( Delicate Abyss ) Special edition for the Homage to Montserrat Gudiol, held on April 7, 2007, organized by FIDEM (Fundació Internacional de la Dona Emprenedo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