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Couples

Artist Couples 6.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1.

J cash 2013. 12. 26. 10:48

 

 

 

Wedding Photo 1929

 

 

 

 

Artist Couple들이 대부분 그들의 남다른 재능과 예술가로서의 독특한 개성등으로 
평온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멕시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프리다 칼로와 리베라 디에고의 관계도 처절하고 파란만장하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 1954 )는

독일출신의 사진사 아버지와 멕시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에 약간의 장애가 있었고, 
18살때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로
금속 손잡이 봉이 프리다의 질을 관통하면서 척추및 골반이 골절되는 중상을 당한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프리다는 평생 동안 서른 번이 넘게 수술을 해야 했다
사고로 인한 몸과 마음의 충격과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아, 자화상에 생생하게 표현된 것 처럼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생을 맞은 것이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 )는 스페인계 멕시코인으로 태어나 

열살 때 산 카를로스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했고, 

16 살 때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등 일찌감치 그림과 함께 인생을 시작했다
프리다가 태어난 1907년 리베라의 나이 20살 때 스페인 장학금으로  유럽 유학을 가서
14년 간 지내며 피카소, 브라크등과 친분을 맺고 수많은 입체주의 그림들을 그려 찬사를 받았다
멕시코로 귀국한 이후에는 그림이 특정한 감상자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대형 벽화 작업에 몰두하였다
마르크스와 레닌, 정복과 피정복, 지배와 저항등이 그가 그리는 벽화의 주요 주제였다

 

이들의 첫 만남은 이미 벽화가로 유명해진 리베라의 작업실에 

학생이었던 프리다가 15세 때 방문하며 시작된다

 

 

1922년(15세) 초상화

 

그당시 프리다의 초상화그림을 보고

리베라는 '비범한 표현력, 정확한 묘사, 진짜를 보여주려는 엄격함'을 갖추고 있어서

'이 소녀는 진짜 예술가'임을 알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후 리베라가 불륜으로 두번째 결혼이 파탄나고

1929년 8월, 43세의 리베라와 22세의 프리다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당시 그들의 결혼은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거구의 바람둥이 리베라와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을 갈망했던 프리다의 결혼생활에 평온함이란 없었다

1934년 리베라가 프리다의 여동생인,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였던  크리스티나와

사랑에 빠져 프리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다

섬세하고 예민하며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지만,

자기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자아를 가진 여성이었던 프리다도 

리베라이외의  많은 남성또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은 양성애자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 도중에 이혼했다가 일년만에 다시 재결합 하면서,

서로간에 상처를 주고 받는다..

프리다는 "일생 동안 나는 두번의 큰 사고를 당한다.

한번은 척추가 부셔지는 교통사고였고, 두번째는 리베라와의 만남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베라의 아내로 남는다

 

이들 부부는 이처럼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부부로서의 의무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하지 못했으나

예술적, 정치적으로는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는 동지였다

예술과 혁명만이 두사람이 만나는 접점이라 볼 수 있으며

창작활동에서 이들처럼 하나가 된 부부는 없었다고 한다

결혼생활은 내내 애증관계의 반복이었으나, 그들을 계속 하나로 묶어 둘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며 느끼는,

서로 상반되면서도 완벽한 합일을 이루게 되는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1929년 5월1일 May Day 시위ㅡ 멕시코시티

 

리베라는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지는 일도 있을 정도로  생명을 소진하듯

새로운 작품세계를 만들어 갔으며

프리다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여성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세계, ㅡ남성과의 갈등에서 빚어진 마음의 피 흘림,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표현하는  그림들을  초현실주의적으로 그렸다

초현실주의의 리더 앙드레 브르통은  '프리다의 예술은 리본을 두른 폭탄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프리다는 통증 완화를 위해 복용한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마흔일곱살에 세상을 뜬다

그녀는  "내가 인생에서 구한 것은 세가지다 ㅡ리베라의 사랑 속에서 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공산당원인 것..." 이라고 말했다

프리다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친구들은 프리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녀는 죽기전 마지막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ㅡ

"행복한 외출이 되길,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 I hope for a happy exit and I hope never to come back ) 

 

불태운 아내의 유골조각을 먹었다는 리베라도

심장병과 음경암으로 프리다가 죽은 지 3년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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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OS CUANTOS PIQUETITOS ! 1935

(몇번 찔렀을 뿐 !)

 

Double self-portrait 1939

 

 

 

Roots 1943 ( 재결합한 후 )ㅡ2006년 소더비에서 560만불에 팔림

 

 

The Broken Column 1944

 

Tree of Hope, Remaining Strong 1946

ㅡ(희망의 나무여, 굳세어라)

 

Thinking of Death 1943

 

                Diego and I 1949                        한때 프리다의 연인- 사진작가 머레이가 찍은 것(1937~8)

 

Moses 1945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들

 

 

 

 

 

 

참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ㅣ 르 클레지오 지음 ㅣ 백선희 옮김 ㅣ 다빈치
화가의 아내 ㅣ 사와치 히사에 지음 ㅣ 변은숙 옮김 ㅣ 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