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arro
피사로(1830~1903)는 서인도제도 St.Thomas 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 인상파화가다
쿠르베와 코로, 밀레의 그림을 익히면서 코로의 화풍에 가장 영향을 받는다
피사로가 야외에서 전원 풍경을 즐겨 그린 것도 코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를 인상파화가들의 學長(dean)이라 칭하는것은,
그 그룹에서 나이가 제일 많기도하지만
그의 현명하고 친절하며 온화한 마음씨때문이기도 하다
세잔은 " 그는 나에겐 무엇이든 상의할 수있는 아버지, 또는 어떤면에서 主人과도 같다"고 말했다
1872년에 피사로는 세잔과 정기적으로 같이 그림을 그린다
피사로에 비해 9살이 어린 세잔은 피사로의 풍경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퐁투아즈의 여러곳을 피사로와 같이 그리면서
피사로의 전원풍경을 그리는 관점을 배우려 하였다
후에 세잔은 피사로를 '첫 인상파화가'라 하였고
1906년 세잔이 67세때 사망하기 직전의 자신의 전시 Catalog에
" Paul Cezanne, pupil of Pissarro"라고 씀으로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피사로의 그림과 세잔의 그림은 같은 장소에서 같이 그렸어도
그림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피사로의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시슬리, 모네와 같은 서정적인 섬세한 화풍이지만
세잔은 이미 그의 실험적인, 강한 개성적인 화풍을 보인다
세잔은 그의 마음을 잡아주는ㅡ 인간적으로 형님같은 피사로를 좋아했기 때문에
피사로가 그린 곳에서
피사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같은 소재의 풍경들을 그렸다
Pissarro, Potager, arbres en fleurs 1877 Cézanne, Le Jardin de Maubuisson Pontoise 1877 설명이 필요없는 피사로 답고, 세잔다운 그림이다
Pissarro, Le petit pont, a Pontoise 1875 Cezanne, Pont de Maincy 1879-80
Orchard, Côte Saint-Denis, at Pontoise (1877), Pissarro (left), Cezanne (right)
Pissarro, The Conversation, 1874 Cezzane,The House of Pendu 1873
세잔의 그림 제목은 '펜뒤Pendu의 집'
피사로 그림의 제목은 길의 두 사람 모습처럼 '대화',
Pissarro, L'Hermitage, Winter 1874 Cezanne, House and Tree, L'Hermitage 1874
집과 집앞의 나무가지 형태가 거의 똑 같다
피사로와 세잔
Pissarro의 self-portrait (1873) , Pissarro가 그린 portrait of Cézanne (1874)
Camille Pissarro and Paul Cézanne were both outsiders to the Paris art scene when they met in the early 1860s. Their intense personal friendship and artistic dialogue lasted for two decades / "Pioneering Modern Painting ; Cezanne and Pissarro 1865~1885"ㅡ LACMA 2005년 전시
피사로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8번개최된 인상파전시회에 전부 참가한 유일한 화가이기 때문에 인상파화가들뿐만 아니라 쇠라, 세잔, 고흐, 고갱등의 4명의 주요 후기인상파화가들의 맏형같은 역할도 한것으로 여겨진다
야외에서 그리던 그림을 그의 작업실에서 완성시키기도 했던 코로에 비해
피사로는 철저히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기위해 야외에서 있는 그대로 그림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때때로 그의 그림이 저속하고 통속적이다는 평을 받았다
피사로는 그림을 배우려는 후배들에게ㅡ 첫 인상을 잊지 않기위해서는 주저하지말고,
중단없이 하늘과 물, 나무가지, 땅등을 동시에 그리라고 했다
1859년 Académie Suisse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공통적으로 살롱전의 화풍에 반감을 가진
일련의 젊은 화가들인 모네 , 세잔, 르누아르, 바지유등과 사귀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조롱받고있던 세잔은
그당시 피사로의 격려와 이해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한다
피사로와 아내 Julie Vellay 1877
피사로의 그림들
1871년 피사로는 어머니의 하녀였던 Julie Vellay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고
파리 외곽의 퐁투아즈(Pontoise)와 루브시엔(Louveciennes)에 살며
강, 숲, 일하는 농부들과 같은 전원풍경을 주로 그린다
Two Women chatting by the Sea 1856
Road to Versailles at Louveciennes 1869
Orchard in Bloom , Louveciennes 1872
Landscape at Pontoise 1874
피사로는 1866년경까지는 그의 그림이 코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의 전시 catalog에 기제하나
1868년부터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않는 독립적인 화가로 선언하며,
평론가들도 '피사로의 그림에서는 흙의 냄새가 나며,
그의 팔렛트는 대기의 밝음으로 감싸져 있다는 평을 한다
38세경에는 코로와 도비니등과 견줄 수 있는 풍경화가로 인정받게된다
보불전쟁으로 인해 런던외곽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그 당시 런던에 와있던 모네와 함께
영국 풍경화가인 터너와 컨스터블의 작품들을 보며, 빛과 대기를 진실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실내 스튜디오에서는 이룰수 없음을 확신하게된다
보불전쟁이 끝난후 파리로 돌아온 후
1974년 첫 인상파 전시회가 개최 되었으나
역사적이며, 신화적인 주제의 그림들에 익숙한
비평가들에 의해 혹평을 받으며 일반 대중들의 일상적인 생활, 거리의 사람들을 그린
이들의 그림은 저속한것으로 여겨졌고,
그중에서도 피사로의 그림은 그당시의 전통적인 스타일에 비해
너무 스켓치적이고 불완전해 보였기 때문에
질퍽거리고 지저분하며 흐트러진(muddy, dirty, unkempt settings) 그림이라고까지 평가됬다
The Church at Eragny 1884
피사로는 1880년대에 그가 느끼기에 예술적 수렁 'mire'로 부터 깨쳐 나오기위해 새로운 소재와 화법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조지 쇠라와 폴 시냑등과함께 수년간 점묘법( pointillism)을 시도하며 신 인상주의파로도 분류되었으나 결국에는 점묘법이 너무나 인위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중단한다
La Recotte des Foins, Eragny 1887 ㅡPointillism그림
말년에 피사로는 눈의 반복적인 염증으로 야외광선에서 작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방, 아파트등에서 창밖의 풍경들을 그리곤 했다
Boulevard Montmartre au printemps 1897 ㅡ viewed from hotel window
2014.1월 소더비에서 3200만 불에..
The Bloulevard Montmartre on a Winter Morning 1897
사망하는 해 Self-Portrait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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