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진품으로 확인된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푼다티에 미술관이 소장한 것으로
언덕 위의 풍차와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을 밝은 색으로 그린 1886년작으로 추정된다
Fundatie미술관의 랄프 케닝 관장은 “화폭 위의 여러 사람들은 고흐의 전형적인 그림 같지는 않지만,
풍차를 두드러지게 묘사한 점에서는 고흐 작품의 전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유명한 파리의 Le Blute-Fin 풍차를 그린 이 그림은
비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이글거리는 태양,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터치가 특징인 고흐의 그림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계단 오른쪽의 검은 나무 두 그루는 전형적인 고흐그림의 특징으로 보인다
파리지앵들의 모습을 그린
르누아르의 Bal du Moulin de la Galette 그림을 답습하여
그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행락지인 Moulin de la Galette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파리지앵들을 그린 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르로 떠나기전의 2년간의 파리체류기간에 그린..
그림 스타일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의 그림들 중 하나다
Moulin de la Galette in Montmartre
네델란드출신의 반 고흐는 초기에 네델란드의 풍경과 생활상을 많이 그렸다
지금도 풍차는 네델란드의 상징이다
고흐는 대략 20여점이상의 풍차가 있는 풍경을 2년여의 짧은 파리생활에서 그렸는데
네델란드라는 변방의 화가가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어떻게 그의 화풍이 변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고흐는 이미 수년전부터 몽마르트에서 작은 구필화랑의 지배인으로 있던
동생 테오의 아파트에
불쑥 찾아와 같이 지내게 된다
고흐가 지낼 당시의 몽마르트는 시골의 모습으로
포도밭도 간간이 눈에 뛰는, 전원 분위기가 감도는 언덕으로
우뚝 솟아있는 풍차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완성된 것은
고흐가 체류했던 당시보다 30년 정도 더 지난 1919년이었는데
그래도 고흐가 체류했던 몽마르트르주변, 특히 그가 살던 크리시 대로 주변은
이미 캬바레 '물랭루즈'등과 같은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는 번화가였다
파리에 체류하던 1886년 3월부터 1888년 2월까지의 짧은 기간에
몽마르트의 풍차는 고흐그림의 주요 모티프였다
파리의 가장 높은 언덕인 몽마르트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 당시
풍차가 여럿 있었다
고흐가 테오와 같이 지내던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Moulin de la Galette의
풍차주인은 풍차의 테라스를 댄스홀로 바꾸고
파리를 조망하기 좋게 개조하였다
풍차가 있는 방아간 또는 공장들은 그림의 소재로서만이 아니라
댄스홀이나 캬바레로 개조되면서
밤의 파리생활의 주요 무대로 변하고 있었다
<< 결국 몽마르트시대의 풍차가 있는 풍경화들은
반 고흐의 그림이 어둡고 우울한 네델란드시절의 화풍에서
경쾌하고 밝은 빛을 표현하는 색조와 두꺼운 칠의 임파스토기법의 그림으로 바뀌면서
고흐 특유의 선명한 색채와 거칠지만 독특한 표현의 화풍을 정립하는
변혁기에 그린 그림들이라고 볼 수 있다 >>
르누아르의 Bal du Moulin de la Galette
Bal du Moulin de la Galette은 그당시 몽마르트의 정상에 있던
마지막 Blute-Fin mill 과 Radet mill 두 풍차사이에 있는
야외 무도장의 흥겨운 파리지앵들의 모습을 그린것이며
1622년에 지어진 Moulin de la Galette는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Moulin de la Galette는 여러 화가들이 많이 그림을 그린 장소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물랭루주’, ‘물랭 드 라 갈레트’ 등
당시 파리의 유명 댄스홀에서 춤추는 무희들을 그린 그림과 포스터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인상적인 색채와 날카로운 실루엣의 포스터는 파리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몽마르트시절 고흐는
그전의 네델란드와 브르셀의 초기그림의 어둡고 침울한 톤에서
파리생활에서 인상주의,상징주의,점묘법, 일본 우끼요에등을 접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이 너무 어두웠다는 것을 깨닫고
단숨에 밝은 색채를 도입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과 그 아래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캔바스에 담아내기위해
인상파의 기법을 연구하고, 색채분할기법인 점묘법등을 여러점 습작하며
그만의 특징적인 화풍을을 발전 시켰다
Cormon studio에 등록하여 그림그리는 기술을 연마하려하였고
그곳에서 로트렉등과 교류하게되며
에밀 베르나르, 폴 고갱, 피사로,폴 시냑등과도 어울리게 된다
그러나 고흐는 궁극적으로
'화가의 감각보다는 화가의 정신'을 그리고자 하였기 때문에
인상파화가들과는 융화될 수 없는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후기인상파라기보다는 탈인상파이며
인상파와 아카데미즘이 혼재하는 그 당시 회화세계를 버리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며
현대회화의 새 장을 연 화가가 되었다고도 분석 된다
몽마르트에 있는 많은 빠, 카페, 댄스홀등은
그 당시의 반 고흐 그림의 영감을 준 소재들이었고
그곳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좀더 경쾌하고 밝은 색조의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가난한 고흐가 작품을 팔아보려고 그의 어두운 과거의 그림에서
인상파화가들의 구태의연한 화법을 흉내내어
인상파화가들처럼 밝고 경쾌한 그림을 시도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1885년의 '감자먹는 사람들' 그림과 같은 어둡고 무거운 톤의 그림을 그리던 반 고흐가
파리 생활에서 갑자기 흥분된 듯 밝고 경쾌한 그림을 시도한 것은
이미 안트워프에서 루벤스 그림의 영향으로 그의 그림을 밝게 바꾸고자 하였고
몽마르트생활이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라고도 분석된다
고흐는 파리생활 중 치아를 열개나 빼내고 가짜 이로 대체했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으나
"파리와 같은 곳이 없다
이곳에서도 삶은 고통스럽지만...오히려 더 어렵지마는
프랑스의 맑은 공기가 나의 뇌를 깨끗하게해주고
두뇌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다'라고도 말한다
trio님의 블로그에 소개된 1900년대의 몽마르트 사진전의 댓글에서
내가 고흐의 그림 중에서는 풍차를 그린 그림들이
그림다워?보이고 세련되?보인다고 한 것은
인상파의 다른 화가들 그림에 비해서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고흐의 그림이
비교적 뎃상과 묘사력에서의 손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에서도
풍차그림은 보기에 좋다는
나 개인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다
1886
그림 왼쪽에 풍차가 보인다
파리의 가장 높은 언덕인 몽마르트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풍경화다
The Moulin de la Galette 1886
The Hill of Montmartre with Quarry
1886
1886~88
Windmill on Montmartre
1886
윗풍차 그림들은 고흐의 표현주의적인 후기인상파적 특징이 나타나기 전의
거친 고흐 그림 답지않은 아름다운 풍경화들이다
밑의 그림 부터는
일견하여 반 고흐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풍차 그림들..
Vegetable Gardens in Montmartre: La Butte Montmartre 1887
Gemüsegärten auf dem Montmartre 1887
Windmill on Montmartre
1886
Destroyed by fire in 1967
Le Moulin de la Galette
1886
Le Moulin de la Galette 1886
감정을 표현하기위해 의도적으로 두껍게 붓질한
임파스토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붓질 몇번으로 끝냈다
1886 Le Moulin de la Galette
Gardens on Montmartre and the Blute-Fin Windmill - 1887
Street Scene in Montmartre: Le Moulin a Poivre 1887
Three Figures near a Canal/ 1883 Hague
Windmills near Dordrecht 1881
Landscape with Windmill 1881
1885
Le Moulin de la Galette was painted in 1887
고흐의 특징인 생생한 스타일( vibrant style)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생 테오와의 짧은 파리 생활을 통해서
독자적인 회화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자신감을 얻은 고흐는
드디어 남프랑스 아를로 간다
모국 네델란드가 유난히 음울하고 햇빛이 적었기 때문에
고흐는 남프랑스를 너무도 좋아했다
아를에서 약 1년을 보내고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사망하기 까지의 3년간이 고흐의 재능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전 준비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리생활은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형이 아를로 떠난 후 테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이 떠나버린 지금 나는 한 없이 외로워
형만큼 인생의 심오함을 알고 있는 화가도 없고,
형만큼 명석한 눈을 가진 예술가도 없어
형 덕분에 나는 몇몇 화가들과 낯을 익힐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도 형은 평판이 좋았어
형의 그림은 현재의 낡은 인습에 사로잡힌 회화 세계를 일축하고
대 변혁을 가져오게 될거야
그정도로 진정한 예술가야... 반 고흐라는 화가는.."
참고
1. 고흐, 37년의 고독 ㅣ 노무라 아쓰시 ㅣ 김소운 옮김 ㅣ 큰결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ㅣ 신성림 엮음 ㅣ 예담
3. 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하우스 ㅣ 마틴 게이포드 ㅣ 김민아 옮김 ㅣ 안 그라픽스
4. http://en.wikipedia.org/wiki/Le_Moulin_de_la_Galette_(Van_Gogh_series)
5. http://en.wikipedia.org/wiki/Montmartre_(Van_Gogh_series)
6. http://blog.vangoghgallery.com/index.php/2010/11/11/van-gogh-windmills/http://
7. http://www.reuters.com/article/2010/02/24/us-dutch-vangogh-idUSTRE61N48120100224
8. triocavatina blog 1900년대 몽마르트의 가난한 사람들과 풍경화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92445&menuId=-1&listType=3
9. http://www.metmuseum.org/toah/hd/mont/hd_mont.htm
2014.9.19. 오전 10시ㅡ 정원의 구절초가 피기 시작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