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 말러가 그린 풍경화
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벨 에포크시대'의 비엔나는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처럼,
무궁무진한 문화예술계의 재밋는 스토리들이 우리를 즐겁게한다
그중에서
수 많은 예술가들과 염문을 뿌렸던 알마 말러 베르펠( 1879~1964)의 남성편력,
그러면서도 유명한 남편들이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풍족한 노후를 보내고 천수를 다한 그녀는
그 당시 비엔나의 제일 아름다운 꽃이었다
구스타프 말러 알마 말러
바람기 많은 젊은 부인 알마 때문에 속이 무척 끓던
그시대 최고의 작곡가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결국 뉴욕지휘초청을 다녀온 후 비엔나에서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남편에게 속박당하지 않게 되자 그녀는 마음껏 끼를 발휘하게 되고...
성악가였던 그녀의 어머니도 5번 결혼헀고, 말러와 낳은 딸 안나도 5번 결혼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알마의 화려한 남성편력은 본인도 스스로 어쩔수 없는 모계유전성 질병?인것 같다..
코코슈카 ㅡ 바람의 신부 (1913)
말러가 사망하기 전
미술과 산업을 결합시킨 바우하우스의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와 이미 밀회를 하고 있었고,
말러사망후 곧 표현주의 화가 코코슈카와 열정적인 관계를 갖게되지만
거칠고 불안정한 코코슈카와의 관계는 2년여만에 끝난다
그당시 코코슈카는 알마와의 애정행위를 그린, 그의 대표작 '바람의 신부'를 발표한다
아버지가 화가였던 알마의 집에 드나들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의 모델도 알마라는 설은 있다
예전부터 관계가 있던 발터 그로피우스와 1916년 결혼하였으나 ,
발터가 전쟁터에 나간사이에
체코출신의 유태인 문학가 프란츠 베르펠과
비밀애인?관계를 유지하다가 ..1929년 베르펠과 3번째 결혼한다
1930년대들어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기 시작하며
유태인 말러와 베르펠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유태인과 관계가 없는 카톨릭임을 강조하기 위해
카톨릭성당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서,
그녀가 55세에 만난 37세의 젊은 신부 홀른스타이너와 밀회를 갖기시작하며,
결국 신부는 성직을 버리게 되고 ...
그러나 남편 베르펠은 모르는 체 하였다 한다.
1964년 알마가 사망한 후
톰레러라는 시인이 쓴 '알마'라는 풍자시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비엔나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알마
가장 스마트하기도 하지요
한번 그대의 안테나에 그녀를 포착하면
그녀의 마력으로 부터 벗어 날수 없지요' ...
Oskar Kokoschka, “Two Nudes (Lovers)”, 1913
베르펠 유가족이 나치에 강탈당한 이 작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코코슈카가 1913년 처음 그린 알마의 누드
ㅡ말러의 부인인 알마가 등장한 그림이라 무려 1억 6천만불을 호가한다
코코슈카 (1886~1980 )
ㅡ모습이 그가 그린 윗 두 그림의 남자얼굴 그대로 구나....
어릴때 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100여편의 가곡을 작곡하고,
그당시 유명한 풍경화가인 아버지 에밀 야콥 쉰들러의 소질을 물려 받은
수준급 화가이기도 한 알마의 풍경화 한점을 보며..
그녀의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단순한 풍경화지만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나에게는 대단한 그림으로 보여....
'대단한 여인'이란 글제목을 붙힌다ㅡ
알마의 아버지 에밀 야콥 쉰들러 (1842~1892 )가 그린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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