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1969 종이 위에 콩테
45세에 요절한 화가 최욱경(1940 ~1985)을 모델로 한 '꿈의 벽 저 쪽'이라는 소설의 작가 엄광용은 소설 속에 최욱경의 영혼이 실려 있다고 단언한다 소설이기때문에 허구도 섞여 있겠지만 최욱경을 이해하기에는 좋은 자료 같아서 먼저, 인터뷰 부분을 발췌,요약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여성지 기자시절 최욱경의 일주기를 앞두고 그 불가사의한 죽음을 추적한 적이 있다 "창작은 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입니다 제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캔바스라는 공간에 뜯어다 붙힌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시간 속엔 실존만 있을 뿐이죠 시간은 진행되는 그 과정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 한 공간속에 묶여질 수 있는 통시적인 개념으로 통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그러니까 우스운 이야기예요 바로 이 시간에 투사되고 있는 실존을 캔바스위에 가져다 붙히는 겁니다 만약 꽃잎을 바라본다고 할 때, 저는 꽃의 줄기가 자라나는 과정, 꽃잎이 열리는 순간등을 나름대로 상상해 봅니다 그 신비한 세계가, 그 생명력의 위대함이 전율하듯 제 몸 속에서 진저리 쳐집니다 견딜 수 없는 희열의 순간이죠 바로 그 총체적인 경험을 캔바스 위에 현재화시키는 겁니다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성스러운 제단 앞에 무릎을 끓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일체의 정적과 思無邪의 신비로움이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로스코의 대작들은 색체와 형체를 걸러낸 그 단순함이 오히려 도통한 경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색체 혼합의 원숙함, 대상을 이미 초월해 있는 시각, 자신의 입장을 냉정하게 노출시키는 일말의 쓸쓸함 등이 마음에 듭니다 제작품이 로스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제가 요즘 와서 느끼고 있는 감정이 그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얘깁니다
말러의 교향곡, 특히 교향곡 2 번 '부활'의 '심연에서 울리는 합창'을 즐겨 듣습니다 캔 맥주를 좋아하고, 담배는 하루에 두 갑 정도? 작업할 땐 그 이상이구요 커피는 하루 20잔이상... 때로는 사는 것이 지겨울 때도 있어요, 울고 싶도록 싫증도 나고, 어디론가 몰래 도망도 치고 싶고.... 그럴 때는 며칠이고 화폭 속에 파묻혀 버립니다 일종의 도피행각인 셈이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구요
꿈을 소재로 연작형태의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우리는 꿈과 현실사이에 누워 있는 방랑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꿈꾸는 연습을 해오고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겁니다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의 꿈의 세계로 걸어 들어 가는 것 입니다 꿈을 뜯어다 캔바스에 붙히는 것, 그게 바로 추상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신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인간의 직립구조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 사이에는 수직적 구조가 있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상승구조입니다 하늘과 땅의 결합에서, 인간이 태어 나는데, 그 인간이 죽으면 정신적인 것은 하늘로, 껍질뿐인 육신은 땅으로 복귀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꿈도 신화와 같은 동일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승구조인 것이죠 이것이 회화의 공간적 개념이겠죠 땅은 평면이고 하늘은 공간이니까, 추상은 바로 공간 속으로의 긴 여행이 아닐까요? 마치 迷路같은, 꿈길같은,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상징의 구름다리를 놓는, 바로 그와 같은 행위가 아닐까요?.."
자화상ㅡ푸른 모자를 쓰고 1967
엄광용작가에게 소설의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하였고 최욱경이 타계하기 열흘 전에 그녀의 화실에서 저녁을 먹으며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화가겸 무용평론가 김태영시인은 '꿈의 벽 저쪽'책의 마지막 부분에 '無無堂의 새'라는 제목의 작품해설 컬럼을 실었다 無無堂은 최욱경이 사용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화실 옥호이다
김영태시인의 글을 요약하여 올린다
"쬐그만 여자 얼음 같기도 하고 불 같은 장작 같기도 하고 눈 처럼 하늘에서 매일 내려오는 여자".....<화산같은 여자 ㅣ 김영태 >
1950년대에 전혜린이 있었다면, 1970년대에는 캔바스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었던 최욱경이 있다 서울대 미대 대학원을 한 학기 마치고 1963년에 도미, 브루클린 미대에서 석사, 애틀란타미대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교수로활동했던 최욱경은 1978년 미국정부 장려금으로 세계순회전을 열었으며, 1979년에 귀국했다 두 권의 시집을 상재했으며 '뜨거운 추상'을 추구했던 그와의 교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귀국후 영남대 강사를 거쳐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마사 그레이엄(부분)/ 150호
최욱경의 뜨거운 추상화는 체험의 축적과 확산, 시간과 시간의 부딪힘, 이미지의 유동성이 마치 춤 추는 듯한 율동감을 거느렸다 그 추상적 율동은 춤추는 인체라기 보다 네모꼴의 반듯반듯한 背面, 예컨대 면과 면이 연결된 하늘의 상징부터 대형종이 양면에 내려온 두 줄기 깃들이 새의 생체 근육을 붙잡고 있다. 끈과 근육의 관계는 '긴장'임이 분명하다 '마사 그레이엄'이란 유화는 90세까지 살다 간 마사 그레이엄의 춤은 아니다 그 춤과 만난 최욱경의 이미지 조합이 내려온 끈과 매달린 생체의 유기적인 관계 즉, '긴장'인 것이다
최욱경의 그림들은 그의 말대로 '과거와 현재의 체험 속에서 가져다 붙힌 시간의 축적이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었고,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간사의 드라마도 다를게 없다고 그는 말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스코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며, 정적과 思無邪의 신비스러운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다고 말했다 로스코외에 미적인 세계로 대중을 끌어 드리지 않고, 사회의 고질화된 인습, 모순과 병폐를 파헤친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도 시사 했다
'꿈의 벽 저편' 의 작가는 최욱경의 '無'에 대해ㅡ 죽기직전 최욱경이 국외에 있는 동생에게 국제전화로 한 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는 지금까지 사물과 나 사이의 거리를 없애기 위하여 캔바스와 싸워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남는 게 무었일까 내가 캔바스에 투신자살하듯 몸을 던져서, 결국 얻은 게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어떤 것? 존재를 증명해주는 저 거울 뒤의 허상 같은 것? 모르겠다 지금 나에겐 아무것도 없는 세계, 無의 세계만 존재할 뿐이다.." ㅡ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한참 전화를 하다가 혼선되어 끊겼는데 바로 그날 밤에 어머니로 부터 언니의 비보를 전해 들었다....
작은 키에 체중도 43 kg밖에 안되는 최욱경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대작을 그리는 모습/1978 위스콘신 주립대교수연구실
어린이의 천국
종이위에 아크릴로 그린 작품 (덕수궁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 선정된 작품)
Untitled 1977
미국의 모더니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화풍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
학동마을
죽기 전해인 1984년작품 국세청장 로비 사건으로 화가 최욱경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유명한 작품이다
최욱경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그녀의 생애가.. 잭슨 폴록의 아내인 리 크래스너와 함께 그 시대의 몇 안되는 여성 추상표현주의 화가였던 조안 미첼(1925~1992)의 생애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조안 미첼도 고교동창인 바니 로세트와 3년간의 짧은 결혼생활을 끝낸 후 세속적인 평범하고 안락한 길을 포기하고 주체할 수 없는 그녀의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을 홀로 지내며 작가로서의 치열한 삶을 살면서 과도한 흡연과 알콜중독으로, 결국은 구강암, 폐암에 걸려 생을 마감하고 말았는데ㅡ
최욱경도 어려서 부터 딸의 미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에 아낌없는 후원을 하였던 부모에의해 김기창, 박래현부부, 김흥수, 정창섭, 장운상화백등의 대가들에게 개인지도를 받았고 미국유학까지 다녀오며 우리화단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정식으로 소개한 미술사적으로도 높이 평가 받는 여성화가가 되었지만 ㅡ 홀로 외롭게 화가의 길을 가면서..40대 중반의 아까운 나이에 , 과도한 음주상태에서의 수면제복용으로 인한 사고사였는지, 또는 자살하였는지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평소에 지나친 흡연과 음주등으로 건강을 해치면서, 작품을 할 때는 며칠씩 작업에 몰두하는 생활로 스스로 자신의 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녀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길지않은 작품활동기간에 주로 2~3백호의 대작들을 수 백점이나 남긴 그녀는 미국 유학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드 쿠닝과 색면추상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의 영향을 받고 귀국한 후에는 한국의 민화와 단청, 한국의 자연등을 연구하며 서구의 양식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전개한다.
초기(1975-1978)에는 춤동작, 새, 꽃과 식물, 곤충 등의 형상이 혼합되어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다. 성숙기(1979-1985)에는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에서 느낀 아름다움을 다양한 색채와 율동적인 선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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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의 절정기가 지나가고 팦아트의 시대가 도래한 1960년초에 미국에 유학한 최욱경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선배 대가들의 죽음의 전철을 따른 것처럼 되었다
ㅡ잭슨 폴록(1912~1956)은 폭음상태의 과속운전으로 44세에 자동차사고로 사망하였으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나 같고 ㅡ아실 고르키(1904~1948)도 44세에 목매달고 쟈샬, ㅡ니콜라 드 스탈(1914~1955)은 41세에 투신자살, ㅡ마크 로스코는 67세에 손의 동맥을 절단하여 자살했으니.....
What time is it /1972
/1985 폭발하는 화산같은 강렬한 색채들.
이카루스의 눈물
풀밭위의 점심식사
열애 1985
when love cools 1984
" 그림을 통하여 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삶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 숨쉬는 의미를 추구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줌의 흙으로 변할 때까지 나는 이길을 쉬지 않고 가리라 "ㅡ최욱경
Mahler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Mov. 5, "Im Tempo des Scherzo. Wild herausfahrend"
1. 꿈의 벽 저쪽 ㅣ 엄광용 ㅣ 이가서 2. 최욱경의 회화에 나타난 자연 이미지의 연구 ㅣ 서환희3. 한국 근현대미술 100선 도록
4. J cash's Blog ; 조안 미첼ㅡ마지막 추상표현주의 화가 http://blog.daum.net/chungks48/575.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 ㅣ 이석우 ㅣ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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